올해로 대학교를 졸업한지 딱 10년이 되었다.
그만큼 쌓여버린 경력과 그에 맞먹는 책임을... 내가 지고 있나?
10년, 결코 작지 않은 연차이지만 대학원도 다녀오고 새로운 나라에 정착하느라 또래의 사람들보단 많이 뒤쳐졌다는 느낌. 난 그 시간동안 무슨 삽질을 했더라?
#Year 0 : 모 연구소 PM
대학 졸업할 때 까지만 해도 커리어에 대한 아무 생각이 없었다. 고민을 해본적이 없다고 하는게 많은가? 주변 사람들중 반정도는 대학원으로 진학을 했던것 같고, 반은 대량 공채로 뽑아가는 회사에 들어갔고, 난 그때까지만 해도 영어 할줄 아는 공대생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어디든 갈곳은 있겠지라는 대책 없는 생각으로 졸업을 했다.
다행히 그 조건만 보고도 흔쾌히 오라는 연구소가 있었고, 박사분들 연구하는곳에서 프로젝트 메니저로 시다일을 하기시작했다.
수직적인 조직에 적응 좀 해가려는 찰나 비자가 복잡해지는 바람에 6개월만에 나와버렸던 짧고도 아름다운 기억.
#Year 0 - 4 : IT 컨설팅
사람 구한다길래 큰 생각 없이 들어갔다. 공대를 다니면서 훈련된 - 혹은 타고난 - 문제 해결 능력이 반이었고 나머지는 영어가 다 했다.
SI/ SM/ IT 컨설팅을 하는 기업답게 얇고 넓게 이거저거 배웠던것 같다. 기획자로, 사업 담당으로 스마트 도시, 애널리틱스, 디지텅 마케팅, 안드로이드 IDE... 짧은 기간내에 여러 플젝을 경험할 수 있는건 컨설팅 회사의 장점인것 같다. 특히나 뭐든 빨리 질려하는 나에게 심심할 틈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장점이 있으면 언제나 단점이 있다. 컨설턴트로 고객사에 가는 출장은 장점같은 단점이다.
호텔에서 묵는것도 하루 이틀이지.... 성공적으로 플젝을 따냈더니 1 년짜리 장기 플젝 해보라고 보내져버렸다. 지방으로. 지금 생각해보면 울 부장님은 도대체 뭘 믿고 3년차 사원에게 그 플젝을 맡겼을까. 요즘도 기회가 되면 찾아뵙는다.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해보는건 흔치 않은 기회였다. 비지니스 프로세스와 수익구조부터 내 손으로 만들고, 그걸 기반으로 시스템화 시켜서 출시하는거. 마음대로 안되는 사람과 상황들 때문에 속상했던적도 있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고 돈을 받는다는게 참 재미있었다.
장기 출장자에겐 시간이 참 많다. 밤을 새야하는 날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눈치 안보고 퇴근하고, 숙소에 도착하면 온전히 내 시간이었다.
시간이 남아돌면 사색을 하게되는거 같다. 아마 처음 블로그에 글을 끄적이기 시작햇던 때가 이때였던것 같다. 그러다가 계속 IT 컨설팅은 못해먹겠단 생각까지 이르게 되고는(!) 퇴사를 결심하며 다음 스텝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러면서 처음으로 미국으로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로부터 한 달만에 토플, GRE를 쳤고, 두번째 달엔 원서를 넣었고, 세달이 되었을때 합격통지를 받았다.
#Year 5-6 : 대학원
기술과 비즈니스 둘다하고 싶었다. 공대생인데 컨설팅 맛도 봐서 그랬나보다.
뉴욕대(NYU) 에서 컴싸 석사생들과 수업을 들었고, 스턴 MBA 학생들과 케이스 스터디를 배웠다. 하루하루 알차게 보내지는 못했던것 같지만 뉴욕에서 대학원 생활은 인생의 전환점이 되어주었다.
#Year 7-10 : 투자은행
인턴했던 은행에서 입사 제안을 받았고, 수락했고, 대학원 마지막 학기는 펑펑 놀았다. 기술과 비즈니스를 접목하기엔 뉴욕 투자은행이 제격이다 생각했다.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후회막심. 그 때 더 노력해서 더 좋은곳으로 갈걸. 등짝 때려주며 공부하라고 해주는 사람이 왜 없었는가. 엄마..
개발자로 인턴했던 회사인데 정규직으로 입사할땐 테크 프로젝트 매니저 (Technical Project Manager)로 입사했다. 그러다가 나도 공대생인데 못할게 뭐야라는 생각으로 조금씩 코드에 손을 대기는 했다.
미국은 이런거에 관대한것 같다. 하고싶은게 있다면 하도록 해주는거. 플젝 매니징 하다가 처음 커밋을 했을때 엔지니어들이 조금 놀라는 눈치였지만 자기 일을 도와준다는데 싫을건 또 뭐야.
그러다가 점점 코딩에 뒤늦은 재미가 붙었고, 매니저가 이직을 해버린 틈을 타서 엔지니어로 직무를 바꿨다. 근데 같은 부서 안에서 바꾼거라 서류작업 안해버려서 직책은 아직 PM 이라는... 헷갈려하는 사람들 참 많다. 그리고 아무래도 배운게 컨설팅이다보니 PM 같은 생각이나 행동을 할때가 있는것 같다.
어쨌든 플젝 매니저 같은 엔지니어, 엔지니어 같은 플젝 매니저로 지내고 있으니 내가 원했던 것처럼 기술과 비즈니스 둘다 하고있는것 같기는 한데.... 테크회사에 들어간 친구들과 비교해서 실력에 점점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종종 들기는 한다. 10년차 경력을 필요로 하는 회사에서 날 어떻게 평가할까? 슬슬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이직을 해야할 타이밍이 온것 같은데 참 고민이다.
요즘 코로나로 인해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다보니 생각이 많아진다. 그러니 오랜만에 블로그에 이렇게 끄적거리고 있겠지. 그리고 역시 글로 풀어내다보면 생각이 조금씩 정리가 되가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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